“여보, 이소프로필 알코올은 어디에 쓰려고 사놨어?”
“차 닦는 데 쓰려고. 그냥 알코올이야.”
“(에틸)알코올과는 다른 건데? 알코올로 착각하고 소독에 쓰지 마.”
우리 집에 상비된 알코올 솜을 생각하며 미리 주의를 줘야지 생각했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남편은 남은 세제나 샴푸를 종류별로 합치기 좋아한다. 내가 서로 다른 화학성분이 반응하여 또 다른 물질이 생성될 수도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하면, 샴푸나 세제는 상품명만 다를 뿐 모두 성분이 거기서 거기야, 하면서 내가 안 보는 데서 기어이 합쳐놓고는 했다. 어제는 공업용 알코올을, 그것도 99.9%의 액체를 혹시 인체에 쓰는 소독용 알코올로 착각할까봐―세균을 죽이는 알코올 최적의 농도는 70%~80%이다― 미리 알려준 건데 남편이 “그만해!”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이어서 “그냥 화장실에 버려.”라고 했다.
“뭐?!”
이번에는 내가 펄쩍 뛰고 말았다.
가연성 물질을 화장실에 버리면 화재가 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모르다니! 맙소사! 나는 또박또박 큰소리로 화를 내는 남편의 귀에 못을 박았다.
“화장실이나 하수구에 버릴 경우 유증기로 발생하고 불꽃을 만나면 건물이 폭발할 수도 있어.”
몇 년 전에는 고양이가 추위를 탄다고 남편이 캠핑용 석유난로를 집안에 들인 적이 있었다. 석유난로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아파트에서 석유난로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가뜩이나 춥다고 창문을 닫아놓고 있는 겨울에 실내에서 석유난로를 피우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키거나 석유 유증기가 공기에 남아 있어 화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폐도 안 좋고, 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석유난로를 집안에 들이자 나는 또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눈을 뜨니 집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여보!” 대답이 없다. 남편의 방문을 열려고 하자 안에서 “들어오지 마!”하고 소리를 지른다. 후에 알고 보니 난로 위에 화학섬유 원단의 팬츠를 올려놓아 불이 붙은 것이다. 옷은 타고 남편의 얼굴은 검댕이가 묻어 까맸다. 불은 꺼졌고, 한 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집안의 공기는 곧 투명해졌다. 이 얼마나 민폐인가.
언젠가 침대에서 담배를 피워 솜이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발견한 것도 나였다. 내가 곁에서 쉴 새 없이 ‘레이더’를 돌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물박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인데, 유독 화재에 대해서는 어찌 저리도 무지한 걸까. 나는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은 회사에서도 안절부절못했다. 그의 안전 불감증지수가 낮으면 낮을수록 나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졌다. 불안이 지속되면 불안장애가 생기고 불안장애가 심각해지면 공황장애가 온다. 나는 회사 스트레스와 술에 의지하며 신세타령을 하는 남편, 그의 안전 불감증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고민에서 나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 대안으로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글에 고민을 털어놓는 식이었다. 글을 쓰면서 현재의 상황과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고 남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글은 솔직하게 써야 진짜 치유가 이뤄진다. 민낯을 드러내고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채 기록을 남기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자신과 화해를 이루고 상대방에게도 관대해진다. 남편에 대한 원망을 담은 글도 많이 썼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남편의 많은 장점이 발견되었고 그 장점과 단점이 상쇄되면서 모순 덩어리의 유쾌한 캐릭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한 발작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은 화재에 대한 그의 안전 불감증이다. 화재 예방 상식을 다루는 학교에 강제로 보내고 싶어진다.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의 내 노력도 헛되지 않아 지금은 가스버너에 쓰는 부탄가스며 라이터 충전용 가스 등 가연성 물질이 집안에서 사라졌다. 특히 올봄에는 폐암 의심을 받으면서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치료하는 과정에 술과 담배도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순도 99.9%의 공업용 이소프로필 알코올이다. 날이 맑을 때, 보일러실과 멀리 떨어진 베란다에서 뚜껑을 열어놓으면 자연적으로 휘발된다고 하니 그렇게 하든지 필요한 분에게 나눔 하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이다. 남편처럼 화재에 불민하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겠지만 화재에 대한 예방교육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리라. 그 외에도 화재에 취약한 그 많은 공업용 스프레이 상품과 가연성 화학약품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쉽게 거래 되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산을 좋아한다. 애연 등산객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화재 발생의 잠재적 요소이다. 금연, 공장이나 물류창고의 철저한 직원 화재 예방 교육, 가연성 화학약품 판매 시의 경고, 주택이나 빌라의 내연 설계, 전열기 사용 시 주의 등 일상생활에서 화재에 대비한 정기 교육 등 개선할 곳이 수두룩하다.
그나마 올해는 화재 소식이 많이 줄었다. 안전 불감증 국민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화재예방에 대한 주의는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우리 부부는 별로 다툼이 없다. 다툼이 일어난 날은 대부분 내가 남편에게 화재에 대한 경고를 했거나, 카드사용을 줄여달라는 권고를 한 날이다. 내가 지병을 얻으면서 이젠 내 의견을 많이 따라주는 편이다. 맙소사, 20년을 불안 속에서 살았다. 이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