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의 일기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두려웠는데 정작 맞닥뜨리고 보니 별거 아니다.
쉬라고 하는데 나쁜 건가.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져 활력을 잃은 나에게
생동감 있게 살아보라는 주문이다.
어쩌면 가라앉는 배에서 구명보트에 올라탄 것일지도.
(회사는 청산과 동시에 구조조정 중)
오늘 참 이상했다.
회사에 화재경보기가 몇 번이나 울렸다.
나는 화재에 트라우마가 있어 화재경보기만 울리면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이 사무실에 이사 오고 처음 접했던 상황이다.
동료직원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내린다.
화재 없는 화재경보기의 울림.
‘이상하네, 왜 하필 오늘?’
문득 신의 계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삶에 지금 화재경보가 울리고 있다.
한 번은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독촉하고 있다.
아픈 데가 있는데 일을 핑계로 차일피일.
또는 회피 심리로 미루고 있다.
내 몸의 경보는 진즉에 울리고 또 울렸다.
한 템포 쉬어가라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가족한테는 창피하지만 잘린 것이 퇴사보단 당당하다.
‘자의가 아닌 타의야, 난 피해자라고.’
컵과 등받이 쿠션 등 잡동사니 물품을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약간 휘청거렸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50대, 휘청거릴 나이이다.
딸에게 퇴사 소식을 전하니 ‘엄마 괜찮아’한다.
고생했으니 푹 쉬라면서 캡쳐 이미지를 보내주었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자막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그해, 나는 큰 수술을 받았고 이듬해 재차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4년째 투병하며 버텼다. 올해, 나의 건강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데 4년이나 걸렸다…….
건너뛸 수만 있다면 건너뛰고 싶지만 혹시 병고가 닥치면 배움과 성장의 새로운 단계임을 인지하시라. 나는 병고를 통해 삶과 죽음, 고통의 심연을 보았다. 소소한 일상이 모두 기적이기에 우울할 겨를이 없어졌다. 취약한 마음이 단단해지고, 그릇이 우주적으로 확장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신이 그대를 죽지 않을 만큼 고생시켰다면 필시 그 의도가 있으리라.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감정들을 잘 털어놓으니 훨씬 수월해졌어요.
감사합니다. 그때는 그게 엄청나게 큰 사건으로 다가왔었는데 별거 아니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