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후반, 취직하기도 참 애매한 나이다. 내 시간을 저렴하게 팔고 싶지도 않다. 중고장터에서 만 원짜리 물건을 팔기 위해 한 시간을 소비하는 직거래는 손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런 물건은 차라리 기부하거나 버리는 편이 득이다. 최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땀 흘리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차라리 한 끼를 굶을지언정 내 시간을 헐값에 처분하고 싶지 않다. 인간은 끝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선택하게 된다. 내 시간을 함부로 팔지 않겠다는 생각이 내비게이션 없이 직진하던 나를 멈춰 세웠다. 멈춤의 시간에 비로소 내가 가야 할 곳을 보게 된다.
지금의 내 시간은 시장의 경제가치로 따진다면 0원이다. 나는 집에서 밥하고, 장보고 남편과 고양이를 돌보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재능 기부를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책을 읽거나 산책한다. 이게 전부다.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건강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실직의 위기에 바톤 터치를 해준 남편과 내가 진심으로 도운 사람들 덕분에 위기마다 고비마다 잘 넘겼다. 그들은 내가 돈이 필요할 때 이자 없이 빌려주었고, 숙식이 공짜인 해외여행에 나를 초대했다. 좋은 사람들과 얽혀 있으니 늘 인복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수시로 이 풍요로움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산책길의 풍경은 매일 봐도 새롭다. 흐르는 시간과 빛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들이 내 갤러리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진다. 매일 새로운 보물들을 보여주는 이 은혜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어지럽던 마음은 고요와 순수함으로 채워진다. 타인의 부정적인 간섭을 막아내는 에너지도 생겨났다. 신앙, 책과 산책 등 영혼의 윤활유를 통하여. 홀로 보내는 아침 시간은 활기로 충만하다. 오후 시간은 가족과 함께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밤에는 산책 후 샤워를 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든다.
어제는 유튜브를 보다가 중국의 경제학자 고선문(高善文)의 “생기 넘치는 노인들, 기력을 잃은 청년들, 삶의 의욕을 잃은 중년들”이라는 연설문 구절에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댓글을 보니 그의 어록이 많은 청년들과 중년들의 가슴을 울린 것 같다. 인생을 살 만큼 산 중년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청년들이 걱정스럽다. 4년 전, 첫 직장에 취직한 딸한테 월급 액수를 물어보자 “입에 풀칠할 정도”라고 한 말이 생각나면서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지 않는가. 희망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삶의 의욕을 잃은 중년들도 조금만 버티면 ‘생기 넘치는 노인들’ 행렬에 들어서게 되는데 희망이 안 보인다는 청년들이 걱정이다. 신은 인간이 선물을 고를 때 예쁜 포장지에 담긴 고통이라는 선물도 덤으로 갖도록 만들어 놓았다. 노인의 여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듯 청춘의 방황과 고통은 성숙과 수용으로 가는 여정의 일부다.
생존하기 위해 희망이 안 보이는 일에 반강제로 시간을 파는 청춘에도, 삶의 남은 시간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중년의 단호함에도 모래알 섞인 밥처럼 늘 서걱거림은 있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고, 쉴 곳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시간을 팔고 싶지 않다. 4년 전, 사흘째 폭설이 내리던 그날 병실에서, 나는 홀연 깨달음을 얻었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던 과거를 후회했고, 일하지 않는 자를 경멸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일하고 싶어도 건강을 잃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 일하고 싶어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시간을 파느니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쓰기로 했다. 시간 부자, 직장 생활을 할 때 나의 로망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나는 시간을 함부로 팔지 않겠다. 경제생활을 하지 않으면 지탄받거나 생계가 힘든 세상에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생존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내려진 신의 축복이다. 어떤 이에게는 생존이 삶의 의의 전부일 수도 있다. 돈을 벌어야만 살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릴 생계 수단이 있다면 엄청난 축복이다.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만 할애하여 생계를 돕는 일을 하고자 한다. 스스로 자신을 고용하여 나의 이 자유를 지속적으로 지켜줄 일을 하고자 한다. 병원, 도서관, 지하철 등 대도시의 인프라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아담한 보금자리를 꿈꾼다. 건강이 더 좋아지면 병원과 멀리 떨어진 시골에 집을 사서 땅에 완전히 안착하고 싶다.
나는 혼자 집에 있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집에서 티브이를 보면서 빈둥거리거나, 음주나 흡연 등 몸을 망치는 생활 습관으로 허송세월하는 사람을 보면 괜히 안타깝다 못해 슬퍼진다. ‘요섹남’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은퇴한 남성들은 집에서 아내를 위해 요리를 만들거나 집일을 거들면 결코 ‘삼식이’의 대우를 받지 않을 것이다. 소파에 누워 티브이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트레킹이나 라이딩, 걷기라도 하실 것을 권해드린다.
정말 공감됩니다. 저도 시간의 가치를 크게 느끼는 편이에요. 저도 저런 거래는 피하려고 하는데, 생활이 힘들면 어쩔 수 없겠죠.